인서울에서 내 집을 마련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

[워커스 이슈] 뱅크가 부릅니다, 가질 수 없는 너


신축빌라에 신혼집을 얻은 지 어언 2년. 짐 더미에 파묻혀 살았던 실평수 9평짜리 신혼집이여 이젠 안녕. 밤마다 옆집에서 울리는 핸드폰 진동소리를 느끼고, 옆 건물 거주자의 시선을 피해 커튼을 쳐야했던 날들도 안녕. 신축빌라인데도 복도에 물이 뚝뚝 떨어져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안방 바닥을 갈아엎었던 추억도 있었지. 이제 우리 부부도 남들처럼 아파트에 한 번 살아보려 한다. 1억3천만 원 전세자금 중 은행돈을 뺀 6천만 원. 거기에 2년간 저축한 2천만 원을 가지고 ‘내 집 마련’에 나선다. 물론 엄청난 대출을 받아야겠지만 주거안정만 이룰 수 있다면야. 부부합산 월 소득 400만 원 남짓. 35회를 납부한 청약통장 한 개. 과연 우리 부부가 ‘인서울’에서 전용면적 20평 이하, 방3개짜리 저렴한 아파트를 마련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은 무엇일까?

신상 아파트 분양

내 집 마련의 ‘가장 좋은 예’는 새 아파트를 분양받는 것이다. 신상 아파트를 저렴한 가격으로 득템하는 것만큼 완벽한 ‘내 집 마련’ 방법이 또 어디 있을까. 거기다 위치가 좋은 지역이라면 어마어마한 프리미엄(일명 피)까지 붙는다는데. 피를 받고 분양권만 팔아도 몇 천만 원은 손에 남길 수 있으니 가히 부동산 시장의 ‘로또’라 불릴 만하다. 실 거주 목적이라 해도아파트값은계속오를테니,여러모로 투자가치는 충분하다.

하지만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분양권에 당첨되기가 ‘로또’보다도 힘들다는 거다. 내 눈에 좋으면 남들 눈에도 좋은 법. 특히 서울, 역세권, 신도시 아파트로 입성하려면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정부의 8.2대책이 발표된 후에도 소위 잘 나가는 아파트의 청약 경쟁은 실로 대단했다. 지난 8월, 서울 마포구의 공덕SK리더스뷰는 195가구 모집에 6,739건의 청약 신청이 몰렸다. 평균 34.55대 1의 경쟁률이었다.

오는 10월 청약 모집을 앞두고 있는 영등포 A아파트 상담 부스를 찾았다. 홍보담당자는 A아파트의 무수한 장점들을 쉴 새 없이 늘어놨다. 역세권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지하철과 직통으로 연결해 놓은 아파트였다. 주변에는 타임스퀘어, 이마트, 신세계백화점, CGV 등 대형 편의시설들이 밀접해 있었다. 담당자는 A아파트 주변이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 사업’ 수혜지역이라고 소개했다. 낡은 거리들이 정비되면 아파트 가치가 그만큼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A아파트 지역은 분양가 대비 약 2억 원 이상의 프리미엄이 붙은 전례가 있다. 그렇다면 과연 A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김빠지게도 A아파트의 일반분양 물량은 고작 110여 개 남짓. 몇 천 명의 신청자들이 아귀다툼을 벌이는 모습은 안 봐도 비디오다. 담당자 역시 얼마나 많은 청약 신청이 몰릴지 모른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다면 신혼부부 특별공급을 노려볼 수는 없을까. “아이가 있으세요?” 담당자가 물었다. 없다고 하니 “지금 뱃속에도 없어요?”라며 채근한다. 뱃속에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대답에 “그럼 자격이 안 된다”며 냉정하게 선을 그었다. 그렇다. 신혼부부 특공의 자격 조건은 ‘결혼한 지 5년 이내의 아이가 있는 사람’이다. 자녀 한 명도 우습고, 최소 두 명은 있어야 청약 경쟁에서 겨뤄볼 수 있다고 했다.

그래도 인생에서 잭팟 한 번쯤은 터지지 않을까. 운 좋게 일반분양에 당첨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설사 분양권이 내 손에 들어온다 한들 ‘빛 좋은 개살구’일 뿐. A아파트의 분양가는 아직 미정. 하지만 주변 시세를 따져봤을 때 59m²(17.8평형)타입은 최소 5~6억 원은 웃돌 것으로 보인다. 분양을 받으면 분양가의 약 10%를 ‘계약금’으로 내야 하는데, 당장 5천만 원 넘는 돈이 수중에 있어야 한다. 그 후로도 일정 기간 마다 분양가의 60%를 중도금으로 지급해야 하고, 입주 전 30% 가량의 잔금을 치러야 한다. 중도금 50%는 대출받는다쳐도 3년 내에 추가로 2억 원 가량의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셈이다. 계약을 취소할 경우, 혹은 중도금을 제때 납부하지 못할 경우에는 계약금을 날리거나 15%에 달하는 연체 이자를 물어야 한다. 전세금 8천만 원이 전 재산인 신혼부부에게는 말 같지도 않은 얘기다. 청약 통장으로 엿이나 바꿔 먹으라던 지인의 충고를 이제 조금은 알 것같다.

급매를 구하라

정부가 8.2부동산 대책으로 다주택자의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겠단다. 실로 쌍수를 들고 환영할 만한일이다.정부의대책발표이후,언론은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아파트값이 하락하고 있다며 연일 중계를 했다. 하지만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10억짜리 집이 9억8천만 원이 된다한들 뭔 상관이란 말인가. 그래도 한 술에 배부를 순 없으니 조금은 기다려보자 했다. 언론에서도 다주택자들이 내놓는 급매물이 나올테니,무주택자들은이기회를틈타싼 값에 나온 매물을 낚아채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보름이지나도,한달이지나도,그리고두달이 다돼가도록부동산시장은여전히딴세상 이야기일뿐.왠지부동산가격은더오른것만 같고, 급매물 따위도 찾아볼 수가 없다. 역시 부동산은 발로 뛰어야 하는 것일까. 서울 전역의 부동산을 돌며 발품을 팔아보기로 마음먹었다.

강남, 서초, 송파 따위는 관심도 없다. 영등포, 중구, 서대문, 광진구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서울 변두리에서 밀려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 그나마 서울서 집값이 좀 싸다는(부동산 업자들은 ‘저평가 됐다’고 말하는) 몇몇 지역들에 위치한 부동산을 타깃으로 삼았다.

기대하던 ‘급매물’보다 먼저 나타난 건 ‘허위매물’이었다. 분명 포털에는 강서구 지역에 2억7천만 원짜리 18평형 아파트가 버젓이 떠 있었다. 하지만 부동산 업자는 “아이고 그 물건은 없는데, 아직 (포털에서) 안 지워졌나보네”라며 혀를 끌끌 찼다. 그가 비슷한 가격으로 소개해 준곳은모텔골목에덩그러니위치한한동짜리 조그마한 아파트였다. 양천구에도 분명 2억7천만 원선의아파트가있다고했다.하지만그곳 부동산 업자도 “진즉에 나갔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급매물로 나온 것이 없느냐 물으니, 그런 기대는 접어두라며 충고를 했다. 시세보다 약 20% 정도가 저렴한 진짜 ‘급매’는 희귀템일뿐더러나온다한들게눈감추듯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그는 내가 원하는 ‘3억 미만 20평 미만, 방 3개짜리’ 아파트를 찾겠다며 한참 동안 검색기를 돌렸지만 수확은 없었다. 대신 ‘재건축 예정 단지’로 지정된 지역의 낡은 빌라에 투자를 해보라며 권유했다. 아직 젊으니최소6년간그곳에서버티면새아파트 분양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30대의 대부분을, 재건축 반대 주민들과 실랑이를 해가며, 아파트 분양권만을 바라보며 산다는 것은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정도리스크없는투자는없다며끈질기게 달라붙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역세권 아파트’는 사치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 이번엔 금천구 구석진 동네의 B아파트 단지를 찾았다.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동네였다. 그곳에는 방 3개, 20평 미만, 3억 미만짜리의 매물이 존재했다. 지난 6월 해당 평수는 2억6천만 원에 거래됐다. 비슷한 가격의 물건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부동산 업자는 똑같은 평형대가 어제 3억 원에 거래됐다고 말했다. 남은 매물은 2억9천5백만 원에 나온 1층뿐이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부동산 업자는 “실거래가를 확인해보면 다 나오지 않느냐”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주민은 “아파트 값은 오르면 올랐지 떨어지진 않을 것”이라며 훈수를 뒀다. 3개월 만에 4천만 원이 오른 셈이었다. ‘내 집 마련’이라는 단순한 꿈이 문득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아파트도 협동조합

이번 생에 내 집 마련은 물 건너간 것 같아 우울해하고 있던 찰나. 눈이 번쩍 뜨이는 전단지를 받았다. 구로지역에 들어서는 C대단지 아파트가 평당 1300만 원에 분양을 하고 있다는 광고였다. 청약 통장 따위도 필요 없다고 했다. 심지어 아파트 단지에서 지하철 역 두 곳을 도보로 이용할 수 있는 트리플 역세권 지역이었다. 아파트 홍보관으로 달려가 보기로 했다.

“일단 모델하우스부터 보시죠.” 담당 직원을 따라 모델하우스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눈이 돌아갔다. 20평도 안 되는, 고작 59m²짜리 아파트가 이리도 널찍하고 완벽할 수 있을까 싶었다. 방 3개, 화장실 2개에 주방과 거실도 분리돼 있고, 안방에는 드레스룸까지 갖춰져 있다. 마을버스를 타고 언덕을 기어올라야 하는 20년 된 낡은 아파트와 구조부터 비교가 안됐다. 이래서 사람들이 새 아파트를 찾는 구나, 싶기도 했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상담 부스로 자리를 옮겼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델하우스와 똑같은 59m²형 아파트 가격은 3억5천7백만 원 가량. 수중에 삼십 만 원도 없으면서, 대동빚을 내서라도 사고 싶다는 간절함이 북받쳐 올랐다. 서울 역세권의 대단지 새 아파트 가격이라고는 믿기 힘든 금액이었다. 하지만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법. C아파트는 일반아파트와 달리 ‘지역주택조합’으로 진행되는 사업이었다. ‘지역주택조합’는 6개월 이상 일정지역에 거주한 무주택자나 전용면적 85m² 이하 소형주택 소유자들이 ‘조합’을 구성해 주택을 짓는 사업을 일컫는다. 없는 사람들끼리 십시일반 돈을 모아 집을 짓는다는 취지는 언뜻 보면 공감이 갔다. 하지만 설명이 이어질수록, 애초 취지와는 달리 엄청난 리스크를 감당해야 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피어올랐다.

구청에서는 전 세대수 50% 이상의 조합원이 모이면 조합설립인가를 내준다. C아파트는 50%를 무난히 넘겨 조합설립 인가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착공, 즉 사업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토지를 매입해야 한다. 토지의 95% 이상을 매입해야 사업승인이 떨어지며 곧바로 착공에 들어간다. 하지만 C아파트의 경우 아직 83%밖에 매매의향서 및 동의서를 받지 못했다. 지역주택조합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토지매입이다.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조합원들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돈만 축내며 기다려야 한다.

지역주택조합 사업이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조합원은 분양가보다 20% 가량 저렴한 금액으로 내 집을 장만할 수 있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전제는 ‘계획대로’라는 점이다. 우선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그 즉시 계약금 3천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 그리고 한 달 후 2차 계약금 2천5백만 원을, 그리고 3차 계약금 2천만 원을 납부한다. 계약금만 7천5백만 원이다. 착공에 들어가면 중도금 60%를, 그리고 입주 시 잔금 20%를 치러야 한다. 중요한 것은 ‘계획’ 보다 사업이 늦어질 경우, 조합원들은 계약금 이외의 ‘추가분담금’을 지불하며 버텨야 한다는 사실이다. 담당 직원은 “추가분담금이 없을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다른 지역보다는 확실히 덜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토지매입에 난항을 겪어 거의 10년간 표류하고 있는 지역주택조합도 존재한다. 이렇게 되면 배 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꼴이 된다. 중간에 조합원 탈퇴가 가능한지 물으니, 담당자는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다. 치명적인 리스크는 또 있다.

만약 중간에 사업이 백지화 됐을 경우, 계약금을 전부 돌려받을 수 없다. 계약금 중 2천5백만 원은 ‘업무추진비’라는 명목으로 돌려주지 않는다. 문득 ‘조합’이라는 정체에 의구심이 들었다. 정말 무주택, 소형주택 주민들이 꾸린 조합이 맞는 걸까. 담당자가 손에 쥐어준 기념품 봉투에는 ‘업무대행사’의 이름이 조그맣게 박혀 있었다. 역시나, 업무대행사가 모든 대행 관리를 하면서 조합원들에게 업무추진비를 거둬들이는 방식이다. 담당자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점을 강조하며 배웅을 나왔다.

인터넷에 ‘지역주택조합’을 검색하면, 무궁무진한 피해사례들이 딸려 나온다. 과도한 기부채납에 시달리거나, 조합원들도 모르게 수십억 원의 개발부담금이 청구되거나, 매입한 토지가 실은 각종 은행에 저당 잡혀 있었다는 하소연도 올라온다. 허위광고로 조합아파트 계약금 27억 원을 가로챈 지역주택조합장과 업무대행사 대표, 분양대행사 본부장 등이 구속됐다는 언론보도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2005년부터 10년 간 지역주택조합이 성공한 사례는 약 22%에 불과하다. 특히 토지 권리관계가 복잡한 서울 지역은 성공 확률이 더욱 낮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살 곳을 찾기 위해 위험한 도박을 불사한다. 최악을 피해 차악을 택해야 하는 사람들의 삶이 그렇다.


경마장 말고 법원 경매

배팅을 해야 한다면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승부욕이 생겼다. 유리천장에 갇혀 도박을 권유받아야 하는 사회라면, 시원하게 경매에 뛰어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1회 유찰된 물건의 최저입찰가는 감정가의 80%까지, 2회 유찰된 물건은 감정가의 64%까지 떨어졌다. 잘만 하면 좋은 아파트를 싸게 낙찰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다. 서울서 집값이 나름 저렴한 도봉구로 눈을 돌렸다.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열리는 법원 경매를 참관해보기로 했다.

법정 앞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법정 문 앞에는 대출상담사들이 명함을 무더기로 나눠주고 있었다. 제1금융권부터 제2금융권까지, 경매 잔금 대출을 알선해주겠다는 광고 명함이었다. 낙찰가의 90%까지 대출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들은 낙찰을 받고 법정을 빠져나오는 사람들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호객행위를 했다.

법정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입찰 봉투와 기일입찰표, 매수신청보증봉투를 받았다. 경매에 참가하고 싶다면 서류에 입찰자 정보와 입찰가격 등을 기재하고, 입찰보증금을 봉투에 넣은 후 제출하면 된다. 입찰보증금은 최저입찰가의 10%다. 많게는 6천여 만 원, 적게는 천여 만 원이 들어있는 입찰보증금 봉투가 사건별로 취합돼 법정 위에 쌓였다.

15년된 34평짜리 빌라가 경매에 붙여졌다. 감정가는 3억1천만 원. 1회 유찰이 돼 최저입찰가가 2억4천8백만 원에서 시작했다. 단순히 2억5천 언저리에서 낙찰이 되겠거니 했지만, 최종 낙찰가는 3억976만 원. 감정가보다 24만원 저렴한 금액이다. 17년 된 반지하 빌라도 경매에 나왔다. 이 물건 역시 감정가와 비슷한 1억5천여 만 원에 낙찰됐다. 무려 30년이 된 12평짜리 1층 아파트의 감정가는 1억3천2백만 원. 이 물건 역시 고스란히 감정가대로 낙찰됐다.

낙찰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입찰보증금을 되돌려 받은 후 자리를 떴다. 최고가 매수 신고인, 즉 낙찰을 받은 자는 한 달 안에 낙찰 잔금을 납부해야 한다. 만약 잔금을 구하지 못할 경우 입찰보증금은 고스란히 몰수당한다. 제2금융권 대출 광고가 많은 것도, 잔금을 급하게 조달해야 하는 필요 때문이다. 많게는 수천만 원에 달하는 입찰보증금을 날려먹는 방법은 실로 다양하다. 입찰가에 0을 하나 더 붙이는 실수를 저질러, 1억 짜리를 10억에 낙찰 받았다고 해도 취소할 수 없다. 그저 입찰보증금과 물건을 모두 포기하는 수밖에.

문제가 이런 자잘한 실수 정도라면 부담이 덜할지 모른다. 하지만 경매에 참여하기까지 해당 물건에 대한 현장 답사는 물론, 선순위 가등기 혹은 가처분이 설정됐는지 여부와, 유치권, 법정지상권 등의 전문적인 권리분석도 필수적이다. 아무래도 초보자 홀로 도전하기에는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에 ‘부동산 경매 컨설팅 업체’에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컨설팅 업체는 의뢰받은 물건이 위험한지, 수익률은 어떤지 등의 분석을 비롯해 낙찰 및 후속조치까지 진행해주는 곳이다. 당연히 컨설팅 수수료가 발생한다. 감정가대로 낙찰 받았다 하더라도 부대비용을 무시할 수는 없다. 낙찰자가 주택임대차보호법상 대항력이 있는 임차인에게 임차보증금을 변상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미납 관리비를 지불해야 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끔찍한 것은, 명도분쟁이 발생할 경우 강제집행을 실시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내 집이 간절히 갖고 싶다 한들, ‘철거 용역 업체’를 고용해 용역 깡패 대장 노릇을 한다는 건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었다.

임대아파트는 나를 구제할 수 있나

그저 안정적인 주거 공간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집은 상품이자 리스크였고 부채였다. 아파트 따위는 포기하고 빌라를 사볼까도 생각해 봤지만, 주변사람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빌라는 가격이 떨어진다’ ‘되팔려고 내놔도 잘 팔리지 않는다’는 구매 후기가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가격이 떨어지건 말건 평생 거기서 살겠다’고 우기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역세권의 신축빌라의 경우도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전용면적 46~60m²의 신축빌라 매매가도 지역에 따라 2억 5천에서 많게는 4억 원까지 거래됐다. 부실시공 하자 여부를 가려낼 방법도 마땅치 않았다.

이제 마지막 보루로 눈을 돌려야 했다. 바로 공공임대아파트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는 “내집마련의꿈이쉽지않은무주택국민의 주거안정을 위해” 공공임대주택 사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과연 임대아파트는 ‘내 집 마련’과 ‘주거안정’이라는 절박함에서 나를 구원할 수 있을까.

임대주택 종류에는 행복주택, 국민임대주택, 장기전세임대, 영구임대, 재개발임대 등이 있다. 이중 행복주택 임대료는 주변 시세의 60~80% 정도로 신혼부부에게 인기가 높다.

행복주택에 청약을 신청할 수 있는 소득기준은 가구당 월평균 소득의 100%(3인 이하 가구, 488만4,448원)다. 해당 세대가 보유한 자산가액은 2억2천8백만 원, 자동차가액은 2522만 원을 넘으면 안 된다. 주택청약종합저축 가입 2년을 경과했거나, 월 24회 이상 냈으면 경쟁에서 3점 가점을 받지만, 그 이하면 1점밖에 받지 못한다. 조건은 무난히 통과가 가능하다. 하지만 가장 높은 장벽인 신혼부부들 간의 ‘청약 경쟁’이 남아 있다.

올해 SH가 1차로 공급한 신혼부부 대상 행복주택 경쟁률은 9:1이다. 다른 공공임대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올해 신혼부부 대상 국민임대 청약 경쟁률은 15:1, 영구임대는 12.8:1, 제34차 장기전세는 11.3:1, 재개발임대는 7.9:1이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임대아파트에 입성한다 해도 또 다른 유리천장에 맞닥뜨리게 된다. 일반 아파트 주민과의 차별문제다. 최근 사람들 사이에서 ‘휴거’라는 신조어가 번졌다. 임대아파트인 휴먼시아에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휴먼시아 거지’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지인이 사는 서울 은평구 H임대아파트를 찾아가 봤다. 화려한 분양아파트 사이로 10분 정도 걸어 오르니 초라한 외벽의 임대아파트가 나타났다. 그곳은 ‘소셜믹스(분양과 임대를 함께 조성하는 제도, 혼합주택)’형으로 분양아파트들과 같은 단지에 속해 있다. 그러나 한데 모여있는 임대동 3채는 사실상 ‘임대단지’로 미운오리새끼 취급을 받는다.

H아파트는 경사가 높아 동에서 동을 오가는 ‘셔틀 엘리베이터’가 있다. 하지만 임대동 주민은 이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지 못한다. 셔틀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는 카드는 분양동 주민에게만 지급됐다. 지인의 집을 비롯한 임대동의 홈네트워킹 서비스도 어느 순간 끊어졌다. 임대동 주민들은 손님이 방문하면 현관문을 열어주기 위해 1층까지 직접 내려와야 한다.

지난해 12월에는 송파구의 한 장기전세 임대아파트 입주 예정자가 차별 때문에 계약을 해지하는 사례도 있었다. 해당 단지의 구립 어린이집이 장기전세 입주민 자녀의 입소를 제한해서다. 이 어린이집의 입소 구분은 해당 단지 입주자 70%, 외부 30%였는데, 장기전세 주민은 연령별 한 명으로 제한했다. 논란이 되자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까지 나섰지만, 이미 임대아파트 주민들은 깊은 상처를 입은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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